Tuesday, April 30, 2013

선한 영향력


저는 우여곡절 끝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한 환자가 있었죠.... 40대 초반의 여자였는데 위암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CT가 그때만 해도 3cm 단위로 잘라져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암이 작으면 잘 보이지 않죠. 일단 보고를 드려야 했죠....

아침에 주임과장에게 이런 환자가 있었고, 전이가 확인이 안됩니다 하고 보고를 드렸더니, 배를 먼저 열어보고 전이가 되어있으면 닫고, 안 되어 있으면 수술을 하라고 하더군요.
근데 환자 보호자에게 동의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런걸 환자에게 이야기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가족과 보호자를 이야기해봤더니 남편은 죽었고, 시댁식구들은 연락이 끊어졌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어 본인에게 직접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고등학교 아들과 중학교 딸이 하나 있는데,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어떡합니까.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해야 합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술 날짜를 잡았죠.
헌데 배를 열고 보니까 저희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가슴부터 배까지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되어있더군요. 작은 암세포로 전체가 퍼져있었어요. 너무 심각했던 거죠. 바로 닫고 수술실을 나왔습니다. 그런 경우 대개는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하고 다시 환자에게 가려고 하는데,
저는 그 장면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창 밖으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고, 가습기에서 희뿌옇게 수증기가 나왔고, 침대 옆에서 아이 둘이서 검정색 교복을 입고선 엄마 손 하나를 둘이서 잡고 서 있더군요.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느낌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눈이 마주치자 환자가 저를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해요.
환자는 알고 있었던 거죠. 수술을 했더라면 중환자실에 있었을 텐데 일반 병실이니까,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옆에는 지금 애들이 있으니까, 지금은 얘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수술 후 급속도로 나빠져서 퇴원도 못하고 바로 돌아가셨죠.
사망을 앞두고 며칠 동안은 아이들이 학교를 안가고 병원을 왔는데 항상 그 자세였어요. 손을 잡고 아이와 함께 셋이서 서서 있었죠.

우리 외과 의사들은 보통 회진을 하면, 아침 식사를 몰래 숨어서 하고 그랬거든요. 아침 먹었으면 아주 선배들에게 혼났어요. 신참 의사를 3신이라고 하거든요.
잠자는 덴 잠신, 먹는 데는 걸신, 일 못하는 데는 병신. 어쨌든 하는 것도 없다고 먹는 거 보이면 혼나고 그랬어요. 그래서 회진 돌고는 수업 들어가기 전에 컵라면 먹고 그랬죠. 그때 외과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었죠.
그랬던 우리들 중 하나가 돌아가면서 그 병실에서 아이들을 데려와서 같이 라면을 먹고는 했었어요. 하지만 이건 사실 특별한 선의는 아니었어요. 특별한 선의였다면 제 시간에 제 돈으로 아이들에게 맛있는걸 사주었겠죠.
하지만 제약회사에서 가져온 라면을 인턴이 만들어 놓은 라면을 같이 먹었었죠. 후륵 후르륵 먹으면서 아이들한테 이런 저런 대화를 했었을 거 아닙니까.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요.
“아이들에게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나도 힘들었다” 뭐 이런 얘기를 했었나 봅니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했었나 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제가 사실 기억을 못하고 있었던 것을 다른 사람에 의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들의 엄마인 환자는 거의 임종이 다가왔습니다. 이때 의사가 할 일은 사망 실시간이 임박하면 사망확인하고 시간 기록하고 진단서 쓰는 게 다입니다. 간호사한테 정말로 연락이 왔어요. 돌아가시는걸 지켜보면서 저와 간호사는 서 있었죠.
두 세 차례 사인곡선을 그리다가 뚜뚜.. 하면서 심전도가 멈췄는데 아이들은 또 예의 그 모습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죠.
이후의 상황은 대충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울부짖고, 간호사들이 떼어내고, 영안실에서 와서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로 데려가고...

저는 속으로 ‘이걸 어떻게 보지?’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울지 않고 가만히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직 모르나 보다.
그래서 한 잠시 일분 기다렸어요. 그러다 아이의 어깨를 눌렀더니 엄마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요. 봤더니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옷의 절반이 눈물로 젖어 있더라고요. 돌아가신 것을 아는 거였더라고요.
저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습니다. 그리고 서 있는데 그제서야 엄마에게 다가서서 왼팔로 목을 잡고 오른팔로 어깨를 안아요. 그리고는 엄마 귀에 대고 뭐라고 말했냐면..
“엄마 사랑해요.. !” 하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수 많은 죽음을 목격했지만, 떠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 '사랑해요..' 라는 말 안에는 떠나는 엄마에 대한 송별사 일수도 있고, 위로일 수도 있고, 남겨진 자의 각오일 수도 있죠.

저는 많은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어떨 때는 제가 맡았던 환자가 하루에 5명이 돌아가신 적이 있었어요. 인간이 마지막 떠나는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직위? 돈? 그가 누구든,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그가 무엇을 가진 사람이든,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에 하는 단어가 바로 ‘손’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진짜 내 마지막 순간에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어떻습니까.

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내일이 될지, 다음 주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올 것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때로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럼없이 상처 입히고, 더러는 외면하잖아요.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가장 위로 받을 수 있고 마지막에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해보면 집에 있는 가족과 아이들이죠.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보다도 금배지고, 좀 더 필요한 건 공천이고, 그보다 지금 빨리 필요한 것은 돈다발입니다.

어쨌든 이후 저는 안동 신세계 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계속 했지요.
근데 십여 년이 지나서.. 간호사가 하루는 신부님이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피 흘리는 신부님이 오셨나 보구나 했습니다.
제가 안동에서는 항문외과의로는 아주 유명해서 사실 경상도 지역 전체에서 거의 손꼽을 정도거든요. 신부님들이 보통 손님으로 위장해서 치료받으러 오시는데 그런 분이신가 하고 문을 열고 나가니 손님의 얼굴에 아우라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람의 얼굴의 빛깔과 때깔은 다르잖아요? 때깔은 돼지처럼 먹고, 색조 화장품을 바르면 좋아 집니다. 하지만 빛깔은 습관, 태도, 사고, 삶의 방식들이 지금까지 내 얼굴에 반영되어 반죽으로 나온 겁니다.
그 사람의 아우라는 사실상 그 사람에게 나쁜 습관, 나쁜 태도, 나쁜 성향이 거의 없었다는 얘깁니다. 놀라서 제가 “누구십니까” 했더니 대뜸 “저를 모르십니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 고등학생이 저랍니다”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혹시나 잘못한 게 있나 뜨끔 하더라고요. (웃음)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눠보았더니 여동생은 교대를 가서 선생님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두 오누이가 곱게 잘 자랐죠. 그러면서 신부님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입장에서는 가혹하고 힘들겠지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면 남겨진 아이들이 혹시나 잘못되면 어떡할까?”하고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저는 제가 그렇게 멋있는 말을 했는지도 몰랐어요. 그 말씀이 두 오누이가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된 가장 중요한 말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에 벼락이 떨어진 느낌이었어요. 제가 멋있는 말을 했구나 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무심코 한 말이었는데, 무심코 했던 작은 선의가 두 남매의 인생을 바꿨다는 생각을 했더니, 반대로 누군가를 절벽에서 밀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각자 서로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그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급은 위로만 올라가야 하고, 내가 많은 사람을 휘두를 수 있어야 하고, 그 힘은 점점 더 세져야 하죠. 하지만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영향력은 반드시 선한 것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무심코 한 여배우의 기사를 보고, 무심코 그 기사에 댓글을 달았는데, 하필 그 여배우가 그 댓글을 볼 수 있잖아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보편적인 악의는 누군가를 절벽으로 밀어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한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고객을 기쁘게 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고객으로 하여금 진정성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웃음이 진심으로 자유에서 나와야 하고, 진실로 기뻐서 나와야 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에 두근거리십니까?
집에 놓고 온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면 두근두근하고 사랑하는 와이프, 남편의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설레십니까?
이러한 모든 것은 내가 주인이 되는 삶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쁨을 삶 속에서 계속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골의사 -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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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구절은 인본주의적인 글로 귀결되어 제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우리 삶에 주인되시는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거 허락하신 것-시간, 물질, 말과 행동, 생각조차- 이 모든 것을 선용하여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Tuesday, March 26, 2013

기쁨이란 풍선과 파티의 문제도 아니고,내 집 마련이나 자녀의 뛰어난 성적 문제도 아니다. 기쁨은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는 것과 상관있다.

춤추시는 하나님 p57. 헨리 나우웬

Friday, March 8, 2013

This is Arirang

너무나 감동! 스크랩!  우리나라 너무 사랑스럽다.
인터넷에 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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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한달 전쯤이었던것 같다.
좋아하는 동생들과 종로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한 친구가 이런 얘길했다.
우리나라 아리랑이 작년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젠장 아직도 헷갈려.)에 등재되었다고.
음. 처음듣는얘기였다. 나 뿐만 아니라 거기 있는 친구들 모두.

그 친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 외국인이 정말 우리나라 아리랑을 듣고 싶어서 가장 한국적이라는 인사동에 들렸는데,
어디에서도 아리랑을 들을 수 없었다고.
평소 아이디어 넘치기로 소문났던 그 친구는 아리랑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해보고 싶다고 했다. 인사동 한복판에서.

와우 굿.
바로 진행하자고 했다.ㅋㅋ

아이디어를 냈던 그 친구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모집하기 위해 40여명의 연주자 한명한명을 만나, 설득하러 다녔다. 한 친구는 같이 판을 벌리고, 뜻이 통할만한 문화예술계통의 그룹의 대표들에게 연락을 했다. 다른 한 친구는 이 프로젝트를 잘 담아 알리기 위해 자기 팀 예산을 들여가며 장비를 렌트하고 기획을 짰다. 돈을 주는 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기업의 스폰을 받는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아리랑'이라는 공통분모로,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뜻과 재미로 움직이는 청년그룹과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그걸 SNS와 유투브를 통해 널리널리 알려보고 싶었다.



한달 후인 3.1절. (2013.03.01 인사동)

인사동 곳곳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오후 1시에는 도포를 입은 파쿠르를 하는 청년들의 오프닝을 시작으로 인사동 쌈지길 한복판에서 아리랑과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9개의 청년 단체가 모여서 함께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
각 단체가 최소 10명부터 많게는 몇천명의 구성원을 가지고 있다보니
의사소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오해들도 시간을 들여 바로잡아야했다.
항상 그렇듯, 끝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중요한 사실은 함께한 친구들이 모두 순수성과 자발성으로 움직였다는 것.
이거 하나다.

이번 프로젝트는 100% 청년들의 힘으로 이루어졌고, 순수하게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http://youtu.be/wygOocOSOVo




* 참여 청년단체
프리포먼스(http://www.facebook.com/Freeformance)
- 문화, 공연예술의 자유로움을 위한 프로젝트
프로튜어먼트(http://www.facebook.com/proteurment)
- 인디뮤지션을 위한 매니지먼트),
한복놀이단(https://www.facebook.com/hanboknoledan)
한복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모인 전국 연합 비영리 민간단체
UDC(http://www.facebook.com/HelloUDC)
- 전국 대학교 댄스동아리 연합
M&M(http://www.facebook.com/MNMConcert)
- Drawing Dreams 디즈니음악으로 꿈을 그리는 단체
ASA-K
- 한국대학교홍보대사연합
애로우애드코리아(http://www.facebook.com/aarrowad)
- 아시아최초 사인스피닝 청년 사회적기업
K.F.P.F (http://www.parkour.kr/)
- KOREA FREERUNING PARKOUR FEDERATION
Woolryeok(http://www.facebook.com/woolryeok)
- 미디어아트 청년그룹


http://youtu.be/wygOocOSOVo


Tuesday, February 26, 2013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읽다가 후에 다시금 읽어봐야 할 글이라서 적는다.

중국에서 만난 한 분은 북한으로 출퇴근을 하신다.
우리와 달리 중국인들은 북한과 왕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아침에 리어카에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상품을 싣고 북한 장터에 나가서 팔고,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남은 물건을 싣고 다시 중국으로 온다.
그냥 장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하면서 복음을 전하신다.

그러던 어느날, 이 분이 다른 사람의 실수로
북한으로 넘어오는 경계선에서 잡혀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 분은 "더 깊은 곳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라는 게 주님의 뜻이라면 감사히 여깁니다."하며 형무소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수용소 사람들은 골치가 아팠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를 독방에 넣었다.

북한식 독방은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1미터로 한마디로 1평방미터짜리 상자다.
빛도 들어오지 않고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보이지 않고 전기도 없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도 모른 채 하루에 한 번 구멍이 열려서 밥이 들어오고 닫힌다. 당연히 배설물도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내일이 막막한 그곳에서 그 분은 무려 3개월 동안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거기서 나와서도 한 달 반 동안 고문과 심문을 당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반 동안 심문받은 내용을 다 적어야 했다.
다 합쳐서 6개월을 감옥 안에 있다가 풀려나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 분께 물었다.

"많이 힘드셨지요?"

"아이, 뭐가요"

보통 사람은 독방에서 48시간을 못 견딘다고 한다.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일주일을 못 견디고 정신이 이상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은 3개월 동안 있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이에 대한 해석이 필요했다.

"한 가지 여쭤볼게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요. 그곳에서 어떻게 견디셨어요?"

그때 그 분이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저는 마시고 있었어요."

"네? 뭘 마셔요?"

"제 안의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수도, 생명수의 원천되신 그분을 마시고 있었어요.
물론 상황은 바뀌었지요. 상자 밖에서 상자 안으로,
사방이 막히고 내일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아무런 희망이 없이 앉아 있어지만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밖에 있든 안에 있든, 내 안에 계신 그분은 바뀌지 않았어요."

철인은 최악의 상황을 최고의 상황으로 바꿀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문을 당하고,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을 받고,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는다.
이런 자를 세상은 감당치 못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히 11:35~38).

어떻게 최악의 상황이 최고의 상황이 될 수 있는가?
왜 욱여쌈을 당해도, 고꾸라져도 괜찮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이런 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기뻐할 수 있다.
기도응답이 안 되도 감사할 수 있다.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오직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할 수 있다(합 3:17~18).
본질을 소유한 예배자로 살아갈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끄덕없이 믿음을 지킬 수 있다.

-다니엘김, 철인

Tuesday, February 12, 2013

메모

한 개인의 영적 성숙은 어떤 방법으로 단기간에 또는 강요된 방법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71

우리는 교회에서 서로를 소개하고 이해하는 데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만났고,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정체성일 수 있다. p133

-떠남, 이용규

Monday, February 4, 2013

맡기는 믿음

어제 그동안 준비하던 시험을 치루었다.
1교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참 괴로웠다.
그 동안 많이 봐 왔던 것인데, 막상 쓰려고 하니 머리속이 텅 빈것만 같았다.

1교시를 망치고 그냥 나올까하는 생각이 컸지만 2교시부터는 그냥 썼다. 그렇게 400분간의 시험은 끝났고...

저녁 예배후 잠을 잤다. 시간마다 잠이 깨고 다시 자고, 정작 출근할때는 너무 피곤했다. 목에 담도 걸리고.

어제는 모르고 지나갔지만 다음 시험 준비를 할때 지난 과정들을 다시 겪어야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울컥거렸다. 정말 가슴이 아펐다.

오늘은 한번에 읽기 아까워서 아껴두었던 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오늘 가슴 깊이 울리는 말씀이 있어 기억하고자 한다.

맡기는 믿음이란 '내가 기도한대로 될 것이다.'라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결과 자체를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과정과 결과를 맡기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Thursday, January 31, 2013

Tuesday, January 29, 2013

인내란...

변화되지 않는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삶이 인내다.
-김병년 목사-

Tuesday, January 22, 2013

관계하심

이렇게 정말 찍어보구 싶었는데..ㅋㅋ
근데 성경책을 펼치니 2013년 말씀이 바로 나왔네.
이렇게 또 확신을 주시는군요....

아하.. 하트 그림자 끝에서 시작하는 말씀~

Friday, January 11, 2013

주와 같이 가는 길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에선 중대 기로란 없다.
-장광수-

Monday, January 7, 2013

늦바람..ㅎ

뒤늦게 주일학교 선생님이된 아내...
수련회의 감동을 30중반이 넘어서야 알게된 아내...
회사땜시 참석 못한 나
여보~~ 넘 부럽구만~
내가 다 눈물이 난다구..

Friday, January 4, 2013

광야학교

오늘 전도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저에게 있어서 시험공부기간은 하나님께서 제 자신을 훈련시키는것 같다"라고 했죠. 시험이 안되어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버리게 된다라는...

전도사님은 "시험공부기간이 광야학교네요"

그러니, 이 또한 감사할일 아닌가.
샘솟는 이 기쁨!

Thursday, January 3, 2013

아이폰5 인증 ㅋㅋ



2013년 올해의 말씀



2013 기도제목

•교회를 위해
1. 세광교회가 온전히 봉헌되길
2. 늘 주님과 동행하는 교회되길

•나라와 민족을 위해
1. 주님만을 섬기는 나라되길
2. 북에 있는 동포들이 평안하고, 남북 평화통일 되길

•이웃을 위해
1. 몸담고 있는 회사 신우회가 주님의 일을 할수 있도록 잘 모일수 있게
2.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있길

•가정을 위해
1. 늘 주님이 함께하시는, 주인되시는 가정되길
2. 현지, 윤지 지혜롭고 가족 모두 건강하길

•자신을 위해
1. 시험준비 잘하고 좋은 결과 있길
2. 믿음으로 굳게 서고 삶으로 나타나길

PS. 저의 올해 기도 제목입니다. 혹 보시면 같이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