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2, 2011

마권사님을 떠나보내며...

어제 저녁이었다.. 다들 고생이라 저녁을 먹다가 회식으로 이어졌다. 유난히도 그곳은 인터넷이 안되어 답답했는데...교회 집사님으로부터 문자가왔다. 그 문자메시지도 장문이어서 전체가 수신이 안되었다.

그냥 교회 할일들에 대한 이야기일줄 알았는데, 문자를 받고 보니 마권사님이 소천하셨다라는 알림이었다.

마권사님은 올 초에 담도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뒤로한채 남은 시간을 기다리기로 작정하였었다. 아마도 남은기간을 항암치료로 시간을 보내기 싫었을듯하다...
이번에 첫 손주도 보긴했지만, 하늘나라로 가기엔 가족들에게도, 교회에서도 너무 힘들듯하다. 들은바에 의하면 어제 갑자기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와는 많은 추억은 없으나, 교회학교 교장선생님이었고, 큰 딸 현지에게는 선생님으로서 많은 보살핌 주던 분이셨다.

주일마다 같이 생활하던, 교회 궂은일도 마다 않던 분이 당장 내일 예배에서 볼수 없다니, 맘이 저려온다.

요새 너무 바빠서 출근했지만, 조문을 꼭 가야해서 장례식장에 갔다. 안사람과 애들은 그곳에서 만나기로하고...

장례식장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국화를 헌화하고 기도를 하는데 감정이 너무나 북받쳐왔다.
마권사님은 물론 좋은 곳에 계실것이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눈물이 되어 나올뿐이다...

아이들은 삶과 죽음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지만, 안사람과 나는 우리들 삶이 40대를 향하여 가고 있고, 짧으면 십년이요, 길면 삼십년쯤 될듯..

그냥 저냥 적었지만, 마권사님을 위해 기도를 많이 못 한 것이 송구스럽다.....

Thursday, June 9, 2011

Monday, June 6, 2011

아침부터 웃음이..

오늘은 현충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했다. 요새  프로젝트를 한번에 두개 수행하고 있는데 정신이 없다. 그 중에 하나를 얼마전까지 대전에서 하다가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서울에 있는 합동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혹시 어떤일을 하는지 궁금할까봐 끄적거리면..  4대강 사업중의 하나인 안동댐 임하댐 연결터널 공사 턴키사업을 새로운 프로젝트로 하고있다. 이 사업에서 연결터널의 크기와 위치를 결정하기 위한 분석을 할수있는 사람이 본사에는 단한명도 없어서 어쩔수 없이 맡게 되었다..

암튼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긴한데, 간단한 일이 아니라, 힘이 든다..
일도 PMF(probably maximum flood)처럼 몰려 온다.

휴일인 오늘 여기 턴키사무실은 모두 출근하였다...,
앞자리에 앉은 직원이 출근하자마자 새 구두를 보여주면서,

전날에 구두를 구입했는데 교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뭐 맘에 안들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자세히 보니 구두 양쪽 모두가 오른쪽이었다..
ㅋㅋㅋ

그 직원 미지막 한마디,
거기 구두가게에 남은 것도 똑같은거 두개가 남았을꺼에요...

우리는 자기 중심적으로 생활하는게 익숙해져서, 나로 인해 남겨진 생활들을 전혀 생각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Friday, June 3, 2011

대전으로 출장가는길..

지난 반년간도 매우 바뻤지만, 일주일전부터는 바쁘기 정도가 딱두배라고 할까나?
마치 PMF(probably maximum flood)
가 나에게로 밀려오는 것 같다.

이와중에 KTX에서 빵과 커피를...

바쁨 속에서도 주님이 안 계시는 바쁨이 아닌, 늘 주님과 함께하는 바쁨이 되길 
기도한다...


Sunday, May 29, 2011

휴대폰 어플 시험


참으로 오래간만에 포스팅을 하니 느낌이 다르다.
스마트폰이라는게 있어서, 블로깅이 가능하니, 좋긴한데, 글 쓰는것이 영 속도가 안난다..


그라고 오늘에서야 구글블로그 어플이 있다는걸 알아서 이제서야 쓰게 된다.
사실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블로깅을 한다는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를 도와주는 어플이 있어서 글 적다가, 중간에 저장도 가능하고,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도 바로 올리고...


그리고, 완성이 되면 게시를 하면 되고...
ㅎㅎ

Sunday, March 20, 2011

영국, 프랑스가 떠났다. 러시아와 타이완도 짐을 쌌다. 10여명으로 구성된 몽골 구조대도 18일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됐던 각국 구조대원들의 철수가 시작됐다. 여전히 일본 동부의 수많은 마을이 지진과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흔에 신음하고 있건만 후쿠시마 공항에 착륙했던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뉴질랜드와 호주의 구조 대원 4명이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국 구조대의 귀국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미야기현을 중심으로 생존자 수색에 여념이 없는 구조대가 있다. 바로 한국의 긴급 구조단이다.


지난 12일과 14일 잇따라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파견된 한국 긴급 구조단 105명. 무너진 건물 잔해를 뒤지고 진흙 속을 헤치며 그 어딘가에서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을 생존자를 찾아 지금도 센다이시 아라하마와 다가조시 등을 훑고 있다. 방사능 보호복과 제독약도 다 가져왔다. 시간에 맞춰 방사능 측정도 하고 있다. 하지만 재난 현장을 서둘러 빠져나가는 외국 구조대를 쳐다보면 방사능 피폭에 대한 두려움이 불쑥불쑥 솟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연일 애를 태우고 있는 가족들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래서 생존자 구출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수록 함께 줄어드는 게 있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다. “일본을 돕기로 했으면 실제로 돕고 가야 한다.” “이재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복구 활동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떳떳하게 귀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이동성(53) 단장의 말이다.


긴급 구조단이 일본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인명구조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한국의 구조대는 일본의 소방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이번에 그 빚을 제대로 갚아야 한다.그래서 구조 활동에 대한 일본의 편의 제공 제의에 손사래를 쳤다. 이재민 수송에 이용하는 45인승 버스 2대 비용 90만엔(약 1240만원)도 우리 돈으로 지불했다. 차량에 들어갈 경유 3000ℓ와 휘발유 1000ℓ도 한국에서 공수했다. 파손된 차량과 건물 안, 맨홀 아래에서 시신을 발견하면 이들은 진흙 범벅인 작업복의 매무시를 고친다. 현장에 있던 대원들이 모두 모여 거수 경례를 하고 묵념을 드린다. 일본의 관습에 따라 손을 모아 명복을 빌기도 한다.


구조 대원들의 정성스러운 시신 수습 모습에 이재민들도 울먹이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며느리를 아직 못 찾았습니다.” “회사 동료가 휩쓸려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꼭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느새 배웠는지 또박또박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해 오는 주민도 생겨났다.
숙소는 재해 현장과 가까운 미야기현 공설운동장 옆에 있는 보조운동장에 설치한 텐트다. 며칠 새 강한 눈바람이 날려 텐트 안까지 눈이 불어닥쳤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라고 전한다. 세수도 한국에서 가져간 물티슈로 한다. 이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현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8일 자 신문에서 한국 긴급 구조단원들의 구조 활동을 ‘비통의 수색’이라는 제목으로 소상하게 소개했다.경술국치 101년.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재난 현장에서 두 나라의 새 역사를 조용히 쓰고 있다.



서울신문 도쿄 이종락특파원 201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