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26, 2010

큰 하트를 보실려면, 사진을 클릭해보세요~

June 28th 2010, 부안댐 근처에서...

Saturday, July 24, 2010



오늘 새벽기도후 바로 관곡지로 갔습니다.
카메라를 사고 나서 처음 나간 출사아닌 출사였죠.
7시 전쯤 도착을 했는데, 사람들은 이미 100여명정도 와 있더군요.
참으로 놀랍더라구요, 제각기 카메라를 하나씩, 또는 몇개씩 들고 다니면서 찍는 모습들....

같은 장소에서 각기 다른 모습들을 하나씩 담아내고들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참, 그곳에서 "외모지상열주의"님을 첨으로 뵈었네요^^* 정말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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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곡지를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진사는 역시 사진을 찍을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우리들은 주님을 찬양할때 가장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July 24th 2010, 같은 곳에서 다른 곳으로.....

Friday, July 23, 2010

June 20th 2010, Cafe Mamie 갔다가 아파트 뒷동산에서....
그나저나 oldman님 보시라고, posting을 게을리하면 안되겠어요..ㅋㅋ

Thursday, July 22, 2010

June 2oth 2010, 예배드린후 집앞 Cafe Mamie에서...

Monday, July 19, 2010

1980년의 일이었다. 레버쿠젠의 DF 유르겐 겔스돌프는 그 해 UEFA컵 챔피언에 오른 프랑크푸르트의 스트라이커 차범근에게 경기 도중, 등 뒤에서 심한 태클을 가해 큰 부상을 입혔다. 겔스돌프의 파울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TV를 통해 그 장면을 목격한 독일 축구팬들도 경악했다.
차범근 주치의는 '제 2 요추 골횡 돌기부 골절'이라고 진단 내렸다.차범근이 병원에서 선수 생활의 사활을 걸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을 때 프랑크푸르트는 매스컴을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의 문서를 발표했다.

차범근은 '증오가 아닌 용서라는 기독교적 신념에 입각해 겔스돌프에 대한 형사 고발을 거부한다.'고.

이후 3 년 뒤, 차범근은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 첫날 차범근은 겔스돌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날부터 둘은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무렵 있었던 인터뷰를 나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도를 넘어선 강한 태클과 지져분한 플레이로 덤벼드는 상대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차범근은 이렇게 답했다.
"그러한 상대에게는 '이것은 룰 위반이고 파울이다. 또한 품격없는 행위다 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무시합니다."라고.

품격있는 차범근에게 있어서는 '보복 행위' 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범근처럼 스피드가 있으면 페널티 에이리어 안에서 그 민첩함을 살려 페널티킥을 자주 얻어낼 수 있지 않았겠느냐? 라는 질문에 언제나 웃으면서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그런 행동은 안합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자로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출처:세계적인 축구스타들이 존경하는 갈색폭격기 차붐 차범근

Saturday, June 26, 2010

황금률(황금의 법칙)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은의 법칙
남에게 대접받고 싶지 않은 행위를 남에게 하지 말라.

동의 법칙
남들이 너희에게 행하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행하라.

철의 법칙
남들이 너희에게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전에 너희가 먼저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

받아치기
먼저 남들과 타협하라 그런 다음 남들이 너희에게 하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행하라.

참 별의별 법칙이 다 있구나.....

Tuesday, June 8, 2010

아버지의 이름은 Dick이고 아들의 이름은 Rick 입니다.
Rick은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감아,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되었습니다.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로 혼자 움직일 수도, 말할수도 없습니다.
태어난지 8개월 후, 의사는 부모에게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식물인간이 될 겁니다" 라면서요
하지만 그들은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Rick이 컴퓨터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정도의 간단한 단어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은
"달리다, 달리고 싶다" 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함께 9km 자선 달리기 대회에 나갑니다.
그들은 완주했고, 끝에서 두번째로 골인 하였습니다.
릭은 경기후에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오늘 난생 처음으로 제 몸의 장애가 사라진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1981년 보스턴 마라톤 첫 출전에서 코스 1/4지점에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의 1982년 42.195km 보스턴 마라톤 완주에 성공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최고기록은 2시간 40분 47초입니다.
마라톤을 시작한지 4년뒤, 아들은 더 큰 꿈을 가지게 됩니다.
아들의 소원은 철인 3종경기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수영도 할 줄 몰랐고,
6살 이후엔 자전거를 타본적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것은 미친 짓이라고,
아이를 더 힘들게 할 것이라고.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버리고 철인3종 경기에 참가합니다.
세계 최강의 철인들 틈에서 아버지는
허리에 고무배를 묶고 3.9km 바다를 수영하고,
아들을 태운 자전거로 180.2km의 용암지대를 달리고,
아들이 탄 휠체어를 밀며 42.195km의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버지가 끌어주는 보트나 자전거에 누워있는 것 뿐이었습니다.
모두가 들어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와 아들이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그 부자를 위해 끝까지남아 그들을 기립박수로 맞아줍니다.


아들은 말합니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어요."
이말을 들은 아버지는 말합니다.
"네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하지 않았다"
철인 3종 경기는 아침 7시에 출발하여 밤12시까지 (17시간) 들어와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기록은 16시간 14분이었습니다.
이들은 철인3종 경기를 6회 완주했고 최고 기록은 13시간 43분 37초 입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도전은 계속되어,
42.195km마라톤 완주 64차례
단축 3종경기 완주 206차례
1982년 부터 2005년 까지 보스턴 마라톤 대회 24년 연속 완주
그리고 마침내 달리기와 자전거로 6000km 미국 대륙을 횡단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에 아들이 컴퓨터로 쓴 글은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입니다.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릭은 1993년 보스턴 특수교육분야 컴퓨터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릭은 컴퓨터를 통해 말입니다.
"아버지는 나의 꿈을 실현시켜주었다."
"아버지는 내 날개 아래를 받쳐주는 바람이다"

아버지의 나이 65세, 아들의 나이는 39세
두 사람은 더 큰 도전을 위해 오늘도 달립니다.